生産職 생산직
<생산직>은 포썸무브먼트와 3주년과 리브랜딩을 기념하고자 자체적으로 기획한 DJ파티입니다. '생산직'을 단순히 유형의 물건을 생산하는 특정 직군을 지칭하는 단어를 넘어 컨텐츠, 가치, 문화, 공간과 순간을 창조하는 모든 이름을 포함하는 단어로 재정의하고 재조명합니다.
생산직 01
오늘도 우리는 생산하는 중이다. 외부에서 들어 온 의뢰에 맞춰,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섞은, 콘텐츠를, 공간을, 빛나는 한순간을 생산하는 중이다. 우리가 생산한 것들은 수많은 사람과 만나게 되고, 그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시공간이 생산된다. 생산生産, 사전 속 의미로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행위’, 생산은 우리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생산직生産職으로 칭하고, 지금부터 生産職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보려 한다.
생산직이란 단어를 떠올린 순간의 배경엔 우리가 통과한 시간이 있다. 현수막을 만들고, 시트지를 만들고, 공간에 놓일 오브제를 만들고, 결국엔 공간도 만들면서,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면서 지나온 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과 함께했고, 가늠할 수조차 없는 숫자의 사람이 우리가 만든 것을 경험했는데, 이 시간이 어느덧 3년을 가득 채웠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기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기념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동반한 의무감과 함께.
기념하고자 했던 욕구, 기념해야만 한다는 책임감 섞인 의무감엔 여러 가지 마음이 섞여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건 우리와 함께해 온 사람들과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우리의 일은 의뢰에 따라 방식, 스타일, 과정 등이 달라지기에 온갖 종류의 작업자들과 함께 협업해야만 한다. 그런 맥락에서, 내세울 것 없던 시절의 우리와 흔쾌히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지난 3년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3년 덕분에 조금이나마 힘이 생긴 현재가 됐고, 우리의 힘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우리를 키워준 생태계에 대한 책임감이자 의무감이기도 하다. 우리가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은 없다. 많은 이의 손을 거쳐야만 만들고자 하는 것이 겨우 탄생하고, 사람들 앞에 놓인다. 우리가 속한 생태계가 건강해야만, 우리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기념에 대한 욕구 속에 숨은 또 다른 맥락이었다.
그렇게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고, 우리를 포함한 이 생태계, 너무나 방대해서 손쉽게 정의하기엔 조심스러워지는 이 생태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말이 필요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고, 그럴싸한 것도 있었지만 성에 차진 않아 망설이고 있던 그때, 가장 원론적인 개념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만든다는 것,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걸 만든다는 것, 이 생태계에 속한 이들 모두가 각기 다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걸 만든다는 것’ 만큼은 서로 닮아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게 떠오른 생산직은 아주 명쾌한 단어인 동시에 오해가 쌓여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생산직이란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며, 앞으로 들려줄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작업을 통해, 우리의 이름 생산직을 빛나는 위치로 끌어 올릴 생각이다. 그렇게 생산직이란 단어에 쌓여 있는 오해를 벗겨내고, 곳곳에서 땀 흘리는 생산직을 한자리에 모아서, 생산직의 노력, 힘 그리고 이야기가 선명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아날로그 02
ANALOG는 물리량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흔히 DIGITAL과 대비된다. DIGITAL은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0과 1, 두 가지의 숫자만으로 물리량을 나타내고, ANALOG는 물리량에 도달하기 위해 연속하는 과정으로 물리량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DIGITAL로 표현되는 값들은 단순하고, 명확하며, 오차가 없고, 분명하게, 명료한 결과를 낸다. 그에 반해 ANALOG로 표현되는 값들은 복합적이며, 연속해서 변하고, 조금의 불분명함까지도 보유한 채, 명료해지는 순간을 통과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ANALOG의 방법으로 일한다. 따라서 앞서 정리한 ANALOG에 대한 설명은 우리의 작업 방식, 태도, 과정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일, 그러니까 직접 감각할 수 있는 오브제들을 만들고, 그 오브제들을 녹여내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키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공간 경험을 부여하는 일. 이 일은 복합적인 기준과 그 기준 아래 행해지는 작업들이 섞여 있고, 준비를 꼼꼼하게 마쳤어도 작업 과정에서 수도 없이 생각들이 더해지며 수정된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공간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땐, 언제나 우리의 노력과 마음이 잘 전달되길 기대하며 긴장하게 되는데, 공간을 찾는 사람들 역시 기대 섞인 긴장감을 가지고 우리가 만든 공간 안으로 들어선다. 기대는 불분명하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분명하지 않기에 확신이 아닌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고, 확신이 아닌 기대이기에 오류를 염두에 두며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만든 공간은 언제나 기대와 긴장이 충돌하는 사건의 현장이 된다. 가끔은 몇몇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되지만, 우리는 끝내 실마리를 찾아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지고, 바이닐의 표면이 긁히고, CD에 기스가 나듯 ANALOG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오류의 가능성을 이겨냈을 땐, 더욱 풍성하고, 진실한 전달을 해내는 눈부신 순간이 존재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순간을 포기할 수 없기에, ANALOG가 가진 오류의 가능성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DIGITAL의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에서 효율적이고 명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은 정밀하게 측정되고 저장될 수 있는 데이터의 집합체로, 이러한 디지털의 특성은 우리의 일상에서 널리 쓰이며, 그것은 분명한 결과와 명확한 수치로 세상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반면, ANALOG의 세계는 그 연속성과 미묘한 변화를 중시한다. 이는 마치 우리의 인생이 연속적인 아날로그의 연속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가장 진실하고 깊은 감정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조금은 느리고, 돌아가게 되겠지만, ANALOG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눈부신 순간을 향하여.
손 03
현장에서 작업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의 일은 손의 지시를 따르게 되고, 손의 지시에 따라 일은 앞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손 조심!’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오가고, 나의 손만큼이나 서로의 손이 중요하다는 마음을 공유한다. 우리의 일은 손의 일이다.
양쪽 팔 끝에 매달린 두 개의 손바닥, 각 손바닥과 연결된 열 개의 손가락. 손바닥과 손가락을 포함하는 손. 손을 움직인다는 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이며, 우리의 일은 이 원초적인 행위에서 출발하고, 마무리되는 과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손을 움직여 목재, 아크릴, 시트지, 패브릭 등 잘 어울릴 재료들을 만지며 일이 시작되고, 각 재료의 다른 질감, 온도, 무게 등이 손을 통해 생생하게 감각된다. 그 생생한 감각은 머리로 직결하는데, 손의 감각이 머릿속 새로운 생각들을 일깨워 낸다.
일깨워진 생각들은 다시 손으로 전달되어 작업을 이어가게 하는데, 손을 중심으로 공간에 대한 신호를 주고받는 연속된 과정은, 현장 시공을 준비하며 꼼꼼하게 세웠던 계획을 뛰어넘어 우리의 일을 더 풍부한 결과로 이끈다. 풍부한 결과라는 것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손을 사용해 직접 만지고, 두드리고, 옮기고, 구부리고, 뜯어내고, 문지르는 과정에서 손을 움직이는 작업자의 스타일, 감정, 찰나의 판단 등이 재료 위로 덧입혀지고, 그 재료들로 완성한 공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유일하다는 것이 언제나 옳을 순 없지만, 공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경우라면, 그 유일성이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수천, 수만 번의 손길로,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작업자가 했을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팽팽하게 작동했을 고민이 만들어 낸 유일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손으로 만든 유일한 공간은 묵직한 힘을 품고서 단단하게 유지된다. 설사 그 공간을 찾은 이들에게 당장 그 힘을 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면,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손으로 만든 공간을 매만지며 손을 통해 느껴본다면, 우리의 공간은 분명 그 손끝에 도착할 것이다.
공간을 완성하고 돌아서는 우리의 손은 늘 전에 없던 모습으로 변해있다. 페인트가 묻어 있고, 스프레이가 번져 있고, 가끔은 피가 흘러 있기도 하며, 들러붙은 본드에 끈적거리기도 한다. 그 손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며칠이 소요되고, 어떤 경우엔 앞선 공간의 시간이 여전히 쌓여 있는 손으로 다음 공간을 만들기 위해 현장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손에 공간이 쌓이고, 우리의 손이 닿는 공간엔 우리가 지나 온 시간이 쌓인다. 오늘도 우리 모두의 손이, 서로의 손을 걱정하며 성실하게 움직이고, 빈 공간은 완연한 공간으로 나아간다.
공간 경험 04
오래 전 사람들은 공간을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하였다. 공간은 유한한 것에서 무한한 것으로, 절대적인 것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발전하면서 시공간의 복잡한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공간은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 감정, 추억,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체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공간 자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공간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에서의 변화에 기인한다. 공간은 오늘날 사람들과 브랜드 간의 상호작용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가 공간을 제작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 역시 이 소통의 과정, 공간과 브랜드와 사람의 상호작용이 긴밀하고 풍성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메시지에 집중하는 성실함, 공간에 방문할 이들의 취향과 기대감을 고려하는 세밀함, 마지막으로 우리의 경험과 기술을 접목해 작은 구석 하나마저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예민함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가 마련한 공간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의 눈과 귀 그리고 손끝에 의해 그 공간이 경험될 때, 그때야 공간과 공간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가 서로에게 조응하며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는 정보를 단축하여 소비하고, 시간의 경제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진짜'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경험이 그것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공간은 단순히 벽과 바닥, 천장으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경험의 장소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공간의 중요성은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며,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우리의 인식과 감정, 그리고 추억을 형성하는 중심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공간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자원이다. 공간을 디자인하고 활용함에 있어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깊이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자 아날로그의 최전방에 있는 공간 경험이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이끄는 데에는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온전히 나를 드러내고, 상대를 이해하고, 그렇게 섞이고,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의 실현으로 더욱 풍성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간절함. 우리 역시 같은 간절함으로, 같은 마음에 다다르고야 말겠다는 태도로, 계속해서 공간을 만들고, 공간 경험의 장을 나누고자 한다.
소멸 05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생산과 소멸의 연속이다. 매 순간 우리는 시간 속에서 흘러가며, 언젠가 맞이하게 될 소멸을 향해 조금씩 가고있다. 그 사이의 순간들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고 증명하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생산직’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며, 이는 포썸무브먼트가 추구하는 재정의된 가치관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생산직이라는 단어는 흔히 공장의 기계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리의 접근 방식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물건뿐만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고민하고 분투하며 공간과 순간, 문화와 가치를 창조해내는 모든 이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기도 하며,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체성의 일부이다. 우리의 작업은 결코 한 두명의 개인에 의해 완성될 수 없다. 수많은 다른 ‘생산직’들과 연결되어 그들의 손을 거치고, 여러번의 생산과 소멸, 수정과 결합을 반복하며 점차 완전한 모습을 갖추어 간다.
모든 생산의 순간은 소멸의 순간과 등을 맞대고 있다. 기획 과정에서의 고민은 기획서와 같은 문서가 되는 순간 머릿속에서 소멸되고, 그 기획은 실제 제작이 이루어질 때 다시 한번 소멸되며, 제작이 끝난 콘텐츠 또는 공간은 찾아온 사람들과 뜨거운 찰나를 보낸 후 철거 절차를 밟으며 소멸된다. 이러한 소멸 과정은 우리의 삶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소멸해가는 과정 속 삶을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기도 하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무엇을 남기며 어떻게 소멸할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생산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자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당위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게끔 만든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 역시 같다. 생산과 소멸을 반복하고, 수많은 손을 거쳐 만들어진 찰나의 한 순간과 공간속에서 경험하게 될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생산과 소멸의 과정 속에서 우리와 당신이 보다 깊이 연결 되어 함께 하는 것이 ‘생산직’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마지막 06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는 우리를 만들고, 성장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정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발전하며,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과정은 때로는 힘들고 아픈 순간들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색과 선들을 제공한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와 성공에서 똑같이 배울 수 있으며, 때로는 실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생산직의 의미는 여기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창조하는 생산직이다. 그 과정 속에서 실수와 실패는 불가피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발견하고, 개인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아간다.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생산직의 정신이며,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관이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와 성공 모두를 포용하며, 그 과정 속에서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멸의 순간 속에서도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이며, 우리의 삶이 가치 있는 이유다.
각기 다른 주제로 생산직과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지만,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귀결된다. 그건 바로 생산직들이 밟아 나가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만들어내는 성취다. 생산직의 작업은 아날로그로, 손으로 작업하기에 언제나 불확실성과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고, 꼼꼼하게 준비하고 제작했다 하더라도 그걸 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와 순간으로 다가갈지 우리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사라진 후, 누군가의 마음속 어딘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다면, 그 형태가 어떨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과정 또한 다시 한번 우리 생산직을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불안하게 진동하는 우리의 과정 속에서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을 재정의하고, 우리의 작업을, 존재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글이 그들 모두에게 닿을 순 없겠지만, 언젠가는 그들에게 꼭 닿기를 바라며, 당신과 우리의 생산에 찬사를 보낸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과정을 잃지 않는 당신을 위해.
생산직 01
오늘도 우리는 생산하는 중이다. 외부에서 들어 온 의뢰에 맞춰,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섞은, 콘텐츠를, 공간을, 빛나는 한순간을 생산하는 중이다. 우리가 생산한 것들은 수많은 사람과 만나게 되고, 그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시공간이 생산된다. 생산生産, 사전 속 의미로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행위’, 생산은 우리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생산직生産職으로 칭하고, 지금부터 生産職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보려 한다.
생산직이란 단어를 떠올린 순간의 배경엔 우리가 통과한 시간이 있다. 현수막을 만들고, 시트지를 만들고, 공간에 놓일 오브제를 만들고, 결국엔 공간도 만들면서,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면서 지나온 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과 함께했고, 가늠할 수조차 없는 숫자의 사람이 우리가 만든 것을 경험했는데, 이 시간이 어느덧 3년을 가득 채웠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기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기념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동반한 의무감과 함께.
기념하고자 했던 욕구, 기념해야만 한다는 책임감 섞인 의무감엔 여러 가지 마음이 섞여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건 우리와 함께해 온 사람들과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우리의 일은 의뢰에 따라 방식, 스타일, 과정 등이 달라지기에 온갖 종류의 작업자들과 함께 협업해야만 한다. 그런 맥락에서, 내세울 것 없던 시절의 우리와 흔쾌히 함께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지난 3년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3년 덕분에 조금이나마 힘이 생긴 현재가 됐고, 우리의 힘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우리를 키워준 생태계에 대한 책임감이자 의무감이기도 하다. 우리가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은 없다. 많은 이의 손을 거쳐야만 만들고자 하는 것이 겨우 탄생하고, 사람들 앞에 놓인다. 우리가 속한 생태계가 건강해야만, 우리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기념에 대한 욕구 속에 숨은 또 다른 맥락이었다.
그렇게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고, 우리를 포함한 이 생태계, 너무나 방대해서 손쉽게 정의하기엔 조심스러워지는 이 생태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말이 필요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고, 그럴싸한 것도 있었지만 성에 차진 않아 망설이고 있던 그때, 가장 원론적인 개념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만든다는 것,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걸 만든다는 것, 이 생태계에 속한 이들 모두가 각기 다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걸 만든다는 것’ 만큼은 서로 닮아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게 떠오른 생산직은 아주 명쾌한 단어인 동시에 오해가 쌓여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생산직이란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며, 앞으로 들려줄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작업을 통해, 우리의 이름 생산직을 빛나는 위치로 끌어 올릴 생각이다. 그렇게 생산직이란 단어에 쌓여 있는 오해를 벗겨내고, 곳곳에서 땀 흘리는 생산직을 한자리에 모아서, 생산직의 노력, 힘 그리고 이야기가 선명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아날로그 02
ANALOG는 물리량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흔히 DIGITAL과 대비된다. DIGITAL은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0과 1, 두 가지의 숫자만으로 물리량을 나타내고, ANALOG는 물리량에 도달하기 위해 연속하는 과정으로 물리량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DIGITAL로 표현되는 값들은 단순하고, 명확하며, 오차가 없고, 분명하게, 명료한 결과를 낸다. 그에 반해 ANALOG로 표현되는 값들은 복합적이며, 연속해서 변하고, 조금의 불분명함까지도 보유한 채, 명료해지는 순간을 통과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ANALOG의 방법으로 일한다. 따라서 앞서 정리한 ANALOG에 대한 설명은 우리의 작업 방식, 태도, 과정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일, 그러니까 직접 감각할 수 있는 오브제들을 만들고, 그 오브제들을 녹여내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키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공간 경험을 부여하는 일. 이 일은 복합적인 기준과 그 기준 아래 행해지는 작업들이 섞여 있고, 준비를 꼼꼼하게 마쳤어도 작업 과정에서 수도 없이 생각들이 더해지며 수정된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공간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땐, 언제나 우리의 노력과 마음이 잘 전달되길 기대하며 긴장하게 되는데, 공간을 찾는 사람들 역시 기대 섞인 긴장감을 가지고 우리가 만든 공간 안으로 들어선다. 기대는 불분명하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분명하지 않기에 확신이 아닌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고, 확신이 아닌 기대이기에 오류를 염두에 두며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만든 공간은 언제나 기대와 긴장이 충돌하는 사건의 현장이 된다. 가끔은 몇몇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되지만, 우리는 끝내 실마리를 찾아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지고, 바이닐의 표면이 긁히고, CD에 기스가 나듯 ANALOG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오류의 가능성을 이겨냈을 땐, 더욱 풍성하고, 진실한 전달을 해내는 눈부신 순간이 존재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순간을 포기할 수 없기에, ANALOG가 가진 오류의 가능성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DIGITAL의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에서 효율적이고 명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은 정밀하게 측정되고 저장될 수 있는 데이터의 집합체로, 이러한 디지털의 특성은 우리의 일상에서 널리 쓰이며, 그것은 분명한 결과와 명확한 수치로 세상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반면, ANALOG의 세계는 그 연속성과 미묘한 변화를 중시한다. 이는 마치 우리의 인생이 연속적인 아날로그의 연속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가장 진실하고 깊은 감정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조금은 느리고, 돌아가게 되겠지만, ANALOG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눈부신 순간을 향하여.
손 03
현장에서 작업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의 일은 손의 지시를 따르게 되고, 손의 지시에 따라 일은 앞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손 조심!’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오가고, 나의 손만큼이나 서로의 손이 중요하다는 마음을 공유한다. 우리의 일은 손의 일이다.
양쪽 팔 끝에 매달린 두 개의 손바닥, 각 손바닥과 연결된 열 개의 손가락. 손바닥과 손가락을 포함하는 손. 손을 움직인다는 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이며, 우리의 일은 이 원초적인 행위에서 출발하고, 마무리되는 과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손을 움직여 목재, 아크릴, 시트지, 패브릭 등 잘 어울릴 재료들을 만지며 일이 시작되고, 각 재료의 다른 질감, 온도, 무게 등이 손을 통해 생생하게 감각된다. 그 생생한 감각은 머리로 직결하는데, 손의 감각이 머릿속 새로운 생각들을 일깨워 낸다.
일깨워진 생각들은 다시 손으로 전달되어 작업을 이어가게 하는데, 손을 중심으로 공간에 대한 신호를 주고받는 연속된 과정은, 현장 시공을 준비하며 꼼꼼하게 세웠던 계획을 뛰어넘어 우리의 일을 더 풍부한 결과로 이끈다. 풍부한 결과라는 것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손을 사용해 직접 만지고, 두드리고, 옮기고, 구부리고, 뜯어내고, 문지르는 과정에서 손을 움직이는 작업자의 스타일, 감정, 찰나의 판단 등이 재료 위로 덧입혀지고, 그 재료들로 완성한 공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유일하다는 것이 언제나 옳을 순 없지만, 공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경우라면, 그 유일성이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수천, 수만 번의 손길로,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작업자가 했을 판단, 그리고 그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팽팽하게 작동했을 고민이 만들어 낸 유일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손으로 만든 유일한 공간은 묵직한 힘을 품고서 단단하게 유지된다. 설사 그 공간을 찾은 이들에게 당장 그 힘을 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면,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손으로 만든 공간을 매만지며 손을 통해 느껴본다면, 우리의 공간은 분명 그 손끝에 도착할 것이다.
공간을 완성하고 돌아서는 우리의 손은 늘 전에 없던 모습으로 변해있다. 페인트가 묻어 있고, 스프레이가 번져 있고, 가끔은 피가 흘러 있기도 하며, 들러붙은 본드에 끈적거리기도 한다. 그 손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며칠이 소요되고, 어떤 경우엔 앞선 공간의 시간이 여전히 쌓여 있는 손으로 다음 공간을 만들기 위해 현장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손에 공간이 쌓이고, 우리의 손이 닿는 공간엔 우리가 지나 온 시간이 쌓인다. 오늘도 우리 모두의 손이, 서로의 손을 걱정하며 성실하게 움직이고, 빈 공간은 완연한 공간으로 나아간다.
공간 경험 04
오래 전 사람들은 공간을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하였다. 공간은 유한한 것에서 무한한 것으로, 절대적인 것에서 상대적인 것으로 발전하면서 시공간의 복잡한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공간은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 감정, 추억,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체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공간 자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공간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에서의 변화에 기인한다. 공간은 오늘날 사람들과 브랜드 간의 상호작용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가 공간을 제작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 역시 이 소통의 과정, 공간과 브랜드와 사람의 상호작용이 긴밀하고 풍성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메시지에 집중하는 성실함, 공간에 방문할 이들의 취향과 기대감을 고려하는 세밀함, 마지막으로 우리의 경험과 기술을 접목해 작은 구석 하나마저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예민함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우리가 마련한 공간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의 눈과 귀 그리고 손끝에 의해 그 공간이 경험될 때, 그때야 공간과 공간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브랜드의 가치와 메시지가 서로에게 조응하며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는 정보를 단축하여 소비하고, 시간의 경제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진짜'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경험이 그것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공간은 단순히 벽과 바닥, 천장으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경험의 장소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공간의 중요성은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며,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우리의 인식과 감정, 그리고 추억을 형성하는 중심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공간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자원이다. 공간을 디자인하고 활용함에 있어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깊이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자 아날로그의 최전방에 있는 공간 경험이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이끄는 데에는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온전히 나를 드러내고, 상대를 이해하고, 그렇게 섞이고,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의 실현으로 더욱 풍성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간절함. 우리 역시 같은 간절함으로, 같은 마음에 다다르고야 말겠다는 태도로, 계속해서 공간을 만들고, 공간 경험의 장을 나누고자 한다.
소멸 05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생산과 소멸의 연속이다. 매 순간 우리는 시간 속에서 흘러가며, 언젠가 맞이하게 될 소멸을 향해 조금씩 가고있다. 그 사이의 순간들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고 증명하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생산직’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며, 이는 포썸무브먼트가 추구하는 재정의된 가치관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생산직이라는 단어는 흔히 공장의 기계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리의 접근 방식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물건뿐만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고민하고 분투하며 공간과 순간, 문화와 가치를 창조해내는 모든 이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기도 하며,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체성의 일부이다. 우리의 작업은 결코 한 두명의 개인에 의해 완성될 수 없다. 수많은 다른 ‘생산직’들과 연결되어 그들의 손을 거치고, 여러번의 생산과 소멸, 수정과 결합을 반복하며 점차 완전한 모습을 갖추어 간다.
모든 생산의 순간은 소멸의 순간과 등을 맞대고 있다. 기획 과정에서의 고민은 기획서와 같은 문서가 되는 순간 머릿속에서 소멸되고, 그 기획은 실제 제작이 이루어질 때 다시 한번 소멸되며, 제작이 끝난 콘텐츠 또는 공간은 찾아온 사람들과 뜨거운 찰나를 보낸 후 철거 절차를 밟으며 소멸된다. 이러한 소멸 과정은 우리의 삶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소멸해가는 과정 속 삶을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기도 하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무엇을 남기며 어떻게 소멸할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생산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자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당위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게끔 만든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 역시 같다. 생산과 소멸을 반복하고, 수많은 손을 거쳐 만들어진 찰나의 한 순간과 공간속에서 경험하게 될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생산과 소멸의 과정 속에서 우리와 당신이 보다 깊이 연결 되어 함께 하는 것이 ‘생산직’이 추구하는 가치이다.
마지막 06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는 우리를 만들고, 성장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정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발전하며,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과정은 때로는 힘들고 아픈 순간들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색과 선들을 제공한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와 성공에서 똑같이 배울 수 있으며, 때로는 실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생산직의 의미는 여기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창조하는 생산직이다. 그 과정 속에서 실수와 실패는 불가피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발견하고, 개인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아간다.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생산직의 정신이며,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관이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와 성공 모두를 포용하며, 그 과정 속에서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멸의 순간 속에서도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이며, 우리의 삶이 가치 있는 이유다.
각기 다른 주제로 생산직과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지만,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귀결된다. 그건 바로 생산직들이 밟아 나가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만들어내는 성취다. 생산직의 작업은 아날로그로, 손으로 작업하기에 언제나 불확실성과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고, 꼼꼼하게 준비하고 제작했다 하더라도 그걸 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와 순간으로 다가갈지 우리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사라진 후, 누군가의 마음속 어딘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다면, 그 형태가 어떨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과정 또한 다시 한번 우리 생산직을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불안하게 진동하는 우리의 과정 속에서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을 재정의하고, 우리의 작업을, 존재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글이 그들 모두에게 닿을 순 없겠지만, 언젠가는 그들에게 꼭 닿기를 바라며, 당신과 우리의 생산에 찬사를 보낸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과정을 잃지 않는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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